괴짜 심리학_업로드용

리처드 와이즈만 지음 / 한창호 옮김 / 와이즈베리 펴냄

 

 

 

  사람들은 모나리자의 미소가 그 눈을 바라볼 때는 훨씬 분명해지는 반면, 입을 똑바로 쳐다볼 때는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리빙스턴 교수는 그림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환상적인 분위기는 인간의 눈이 세상을 두 가지, 아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똑바로 쳐다볼 때 빛은 중심와라 불리는 망막의 한가운데로 비쳐든다. 눈의 이 중심부위는 바로 햇빛 등이 비치는 밝은 곳에 있는 물체들을 보는 데 탁월하다. 반면 사람들이 곁눈질로 무언가를 볼 때는 빛이 망막의 주변부에 비쳐든다. 결국 다빈치의 그림은 망막의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는 것이다.

 

  1963년에 미신적인 금기를 깸으로써 얻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13클럽의 전 회장이었던 J. 아서 리먼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행운과 행복과 건강을 원한다면 온갖 미신을 타파하세요. ····· 우리 클럽의 모든 회원들은 운이 좋았습니다. ····· 나는 지금 78세이지만 나보다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이 있다면 한번 나와 보세요.”

 

  스웨터의 전 소유주가 한때 대량 학살자나 광신적 지도자와 같이 악의 화신이었던 사람으로 가정했을 때 사람들은 가장 커다란 반감을 샀다. 사람들은 세탁이 되었다 해도 한때 대량 학살자의 소유였던 스웨터보다는 개똥이 묻은(진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스웨터를 입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당신이 신형 멋진 계산기를 사려고 4만 원짜리 계산기를 고른다. 점원은 바로 다음날 세일 판매가 시작될 것이라 얘기한다. 내일이면 계산기를 1만원주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새 컴퓨터를 사려고 보다 200만 원짜리 컴퓨터를 고른다. 역시 점원은 다음 날 세일 판매가 시작될 것이라 설명한다. 내일이면 똑같은 컴퓨터를 197만원에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의사결정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여러 사람들에게 제시했다. 두 경우 모두 절약할 수 있는 금액이 3만원이니 같은 상황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할 터이다. 즉 사람들은 계산기와 컴퓨터를 그 자리에서 사거나, 그 다음날 구입해 3만원을 절약해야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경우를 다르게 취급했다. 약 70%의 사람들이, 계산기는 다음날 사더라도 컴퓨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겠노라고 응답했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기보다는 총액 가운데 몇 퍼센트나 절약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3만 원은 계산기의 75%에 해당하지만, 컴퓨터 가격의 1.5%에 불과하다. 결국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나은 거래인 듯 보이는 것이다.

 

  최고라고 평가받은 농담들조차도 4점이나 5점의 비율이 50%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약 25~35%의 방문자들이 다음과 같은 농담들은 재미있다고 평가했다.

  기분이 상해 있는 여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하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자기가 바 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일어나볼까!”라고 말했다. 몇 초쯤 지나 딱 한 아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여교사가 그 아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네가 바보라고 생 각하니?” 아이가 대답했다. “아니요 ····· 하지만 선생님이 혼자 거기 서 계시면 창피할 것 같아서요.”

 

  최고의 농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독자들이 우월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희극과 비극 간의 차이를 꼬집은 다음의 격언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만일 ‘당신이’ 뚜껑이 안 닫힌 맨홀에 빠지면 그건 코미디다. 하지만 만일 ‘내가’ 똑같은 맨홀에 빠지면 ·····.”

  프로이트에 따르면 농담은 억압이 너무 커지는 일을 방지하게 도와주는 일종의 심리적 배출구로 작용한다. 달리 말하면, 농담이란 사람의 불안감을 해결해준다.

 

  1970년대에 일리노이 주 밀리컨 대학교의 심리학자 고든 포브스와 그의 동료들은 어느 종교집단이 가장 도움을 많이 주고, 어느 종교집단이 도움을 가장 적게 주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냐고 질문하는 일은 별 의미가 없는 듯 했다. 모두들 그렇다고 대답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실험자들은 해당 교회의 일요예배 시간에 교회 주위를 살름살금 돌아다니며 출입구와 주차장에 편지봉투를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그들은 미사를 보고 있는 성당 주위에도 편지봉투를 떨어뜨렸다. 편지봉투는 완전히 봉해져 있었고 우표가 붙어 있지 않았는데 수신인은 지역 거주민인 ‘프레드 거스리 부부’로 되어 있었다.

  결과는 가톨릭신자와 개방적인 교회 신도가 가장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보내온 편지 봉투 중 각각 89%와 87%의 봉투에 우표가 붙어 있었다. 반면에 보수적인 교회의 신도들이 보내온 편지봉투에는 단지 42%만이 우표가 붙어 있었고 나머지 편지는 수취인 요금 지불 우편으로 돌아왔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보수적인 교회의 신도들도 개방적 교회나 성당의 신도만큼 기꺼이 타인을 돕고자 한다. 그러

   나  그들은 타인을 돕는 데 자기 돈을 들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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