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론

플라톤 지음 / 김세나 옮김 / 소울메이트 펴냄

 

 

 

  “멜레토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모든 아테나이인이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 같군요. 오직 나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요. 이 뜻입니까?” “전적으로 그런 뜻이오.” 만약 초인간적인 존재들이 신들의 서자들이라면, 신들의 자식들은 있다고 믿으면서 신들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것은 멜레토스 때문도 아니고 아뉘토스 때문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편견과 시샘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겼든 아니면 지휘관의 명령으로든 일단 어떤 곳에 자리를 잡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하며, 죽음이나 그 어떤 것보다도 치욕을 염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사실은 최대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최대의 불행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이런 무지야말로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무지가 아니겠습니까!

 

  더 나은 사람이 더 못한 자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이 세상의 질서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하는 것처럼 사람을 부당하게 죽이려는 것이 더 큰 해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내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어느 누구에게도 정의에 반하는 행위를 용인한 적이 없습니다. 또 나는 단 한 번도 어느 누구의 선생이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내가 본업을 수행하고자 대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도 거절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내 고소인들 중 어느 누구 못지않게 신들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건을 여러분과 신에게 맡기니, 나와 여러분 모두에게 최선이 될 수 있도록 재판해주십시오.

 

  진실로 내가 받아 마땅한 것을 제의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혜택이어야 합니다. 그것도 나에게 합당한 혜택이어야 하지요. 여러분을 일깨우기 위해 여가를 필요로 하는 이 가난한 선행가에게 대체 무엇이 합당할까요?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불의한 짓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확신하기에, 내가 마치 뭔가 나쁜 짓을 저지르고 거기에 상응하는 형량을 제의함으로써 내 자신에게 부당한 짓을 하거나 내 자신을 고소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죽음의 발보다 비열함의 발이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우면서도 고결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빼앗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법정을 떠나기 전에 내게 유죄 판결을 내린 이들에게 하는 예언입니다.

 

  죽음이 마치 꿈도 꾸지 않는 잠과 같은 것이어서, 죽은 사람은 아무런 지각도 하지 못한다면 죽음은 놀라운 이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는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행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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