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자들

쿠로키 료 지음 / 박은희·이진주 옮김 / 황금부엉이

 

거래자들 1권

  이라크와의 교역은 1990년 8월 6일에 채택된 UN 안보리 결의 661호로 전면 금지됐다. 유일한 예외가 ‘오일 포 푸드 프로그램’으로, 제재가 이라크 국민에게 너무나 극심한 피폐함을 가져다주었다는 비판이 세계적으로 고조됨에 따라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재무부장을 맡고 있는 초로의 사내가 노트와 연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유감이지만 현재 이라크는 UN의 엠바고(제재) 아래 있어 이런 계약서에는 사인할 수 없습니다. 협상 의사록이나 각서를 작성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엠바고(제재)가 해제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SCOP를 둘러싼 상황은 백팔십도 바뀌겠지요.” 총재가 말했다.

  ‘이건 뭔가 낌새가 상당히 이상하다·····.’ 가나자와와 법무부 직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쓰이상사의 오랜 노력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앞으로 귀사에는 석유를 팔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일본은 이라크에 내린 UN의 제재 해제를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나자와는 한 달간 바그다드에 남아 SOMO와 협상을 계속했다. 드디어 이라크 쪽에서 3개월이라면 계약 연장을 고려해 보겠다는 제안을 해 왔을 때, 가마자와는 도쿄의 해외원유부에서 온 다른 직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근데 사할린 B가 형이랑 무슨 관계가 있어?”

“있기만 하겠어? 관계야 많지.” 형은 화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기름이 유출돼서 바다가 오염되면 어떻게 할 거야. 어!?”

형은 정종잔을 내려놓고 가나자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프로젝트는 2년 전에도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지? 다시 사고가 일어나는 건 아닌가 어민들은 모두 민감해져 있다고.”

“이거야 원, 석유 개발이 뭔지 성가시게 한다니까.”

‘사할린 B’가 현지민에게 이렇게 불안감을 주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가나자와는 여동생 도시코 옆에 있는 검은색 서류 가방을 무심코 보았다. 열린 가방 사이로 고래 사진이 표지에 붙어 있는 책자가 보였다. 고래는 조개 등이 달라붙어 있어 흰색과 회색 얼룩무늬 고래로 보였다.

‘귀신고래·····?’ 멸종이 우려되는 고래였다. 북사할린 연안을 먹이처로 삼고 있어 환경단체가 사할린에서의 석유·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도시코는 서류 가방 안에서 A4 크기의 책자를 꺼냈다. 표지에 크게 ‘사할린 석유·가스 프로젝트-홋카이도가 기름 덩어리가 되는 날’이라고 씌어 있었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미군과 동맹군은 이미 이라크 영토의 15%를 제압했다. 8월 5일에는 이라크 남서부의 방공 요새인 누카이브를, 9월6일에는 이라크 서부 루트바에 가까운 공군 기지를 각각 공중 폭격해 방공 체제를 완전히 무력화했다. 임전태세로 대기했고, 서부 국경에는 7000명 규모의 미군과 요르단군이 집결해 있었다.

  에너지 시장에서는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제트 연료를 대량 조달할 것이라는 관측을 바탕으로 제트 연료의 주성분인 케로신 가격이 조금씩 상승했다.

 

  가나자와는 사할린 프로젝트부장과 함께 유즈노사할린스크 시 중심부 공산당 대로에 있는 주정부 사무실을 방문했다.

“도쿄전력이 150만 톤, 도쿄가스가 100만 톤, 앵글로 더치 이스턴 트레이딩이 160만 톤, KOGAS(한국가스공사)가 150만 톤인가·····.”

  집무실 소파에 앉은 사할린 주지사 이고리 파블로비치 파르후트디노프가 부릅뜬 눈으로 자료를 보고 있었다. 2트레인, 연 생산 960만 톤의 LNG 판매 전망표였다. 일본의 전력·가스 회사 8개사와 앵글로 더치 이스턴 트레이딩, 한국가스공사를 합쳐 연간 850만 톤, 증량 옵션을 넣으면 920만 톤의 계약 전망이 섰다.

 

  리걸 스태빌리제이션을 둘러싼 ‘사할린 B’ 프로젝트 스폰서 3개사와 러시아 정부의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은 채 개발 선언의 기한이 서서히 다가왔다. 스폰서 3개사는 이제는 각서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개발 선언은 PSA에 기초해 제2 단계 개발 착수를 선언한다는 취지의 문안이 쓰인 한 장의 서류로, 스폰서 3개사 대표와 감독위원회를 대표하는 파르후트디노프 사할린 주지사 등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제2 단계는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아시아시장에 수출하는 큰 비전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프로젝트는 새로운 러·일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일본 에너지의 중동 의존도가 떨어지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스폰서 3개사 대표가 기쁨과 포부를 말했다.

  거대 유전 개발에 일본을 끌어들인 것은 이란 측의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이슬람 혁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불만을 갖고 있는 국민에게 현 체제가 일본으로부터 지지받고 있음을 호소하고, 국제적으로는 핵 문제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받는 비판의 방패막이로 이것을 이용하려는 목적이었다.

 

거래자들 2권

 

  “태어난 곳은 후베이성 황강사의 보룡촌.” 1990년 베이징에 있는 독일계 항공기 정비 회사에 입사해 총무 일을 맡게 됐고 1993년에는 CAO 모기업에 취직했다.

“그런 촌 동네에서 베이징 대학에 들어가다니 완전히 개천에서 용 난 셈이지.”

센이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는 승승장구해 왔지.”

  케로신 가격이 4~5월에 들어서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8월에는 50달러를 돌파했고, 8월 20일에는 일시적이기 하나 55달러까지 올라갔다.

  첸은 계산을 해봤다. 이전에 기업 조정을 할 때마다 손실액이 6배에서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가령 그 손실액의 증가분을 가장 적은 6배라고 한다고 해도 손실액은 대략 13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다. CAO의 순자산은 2억 1200만 싱가포르달러였다. 13억 달러라니···. 도저히 책임질 수 없는 금액이었다.

전화벨이 몇 번이나 울린 뒤에야 첸은 수화기에 손을 뻗었다.

“CAO는 이제부터 기업 회생 절차를 밟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싱가포르 기업 관련법 제210조에 따라 신속히 법원에 자산 보존을 신청해 주십시오.”

“기업 회생 절차···.”

첸은 일반 승객과는 다른 출구를 통해 공항 건물을 빠져나와 시내의 경찰본부로 연행됐다.

 

“보셨다시피 ‘사할린 B’프로젝트의 파이프라인 공사는 많은 곳에서 러시아 환경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또 파이프라인이 통과하는 아니바 만에서 퍼 올린 토사를 만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바람에 어족 자원에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문제들이 시정될 때까지 EBRD는 ‘사할린 B’프로젝트에 융자를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도시코가 발표할 차례였다.

  “이후에 진행될 프로젝트에 대한 환경 규제는 ‘사할린 B’ 프로젝트를 그 본보기로 삼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 점에서 ‘사할린 B’ 프로젝트에 대한 환경 규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총재께서는 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어서 와이드 서문 센터 등 다른 NGO에서 나온 참석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어느 것이나 석유·가스 개발 사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도시코가 보낸 메일은 ‘사할린 B의 최근 동향’이라는 제목이었다.

‘솜방망이가 부활하는군.’가나자와의 눈앞에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숫자를 보는 가나자와의 눈에는 피로와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사할린 B’프로젝트가 LNG 판매 계약을 체결한 상대와 그 수량이었다. 연간 540만 톤(도쿄전력의 옵션을 더하면 590만 톤)이다. 이것은 일본 총발전량의 20분의 1에 필요한 연료다. 화력발전(LNG, 석유, 석탄)에 한해서 보면 12분의 1 정도다. 이만큼의 양이 들어오지 않으면 일본 각지에서 정전이 발생하고 산업 활동도 정지된다.

‘푸틴에게 LNG를 인질로 잡혔다.’

  기일까지 공급할 수 없으면 판매업자가 책임을 지고 대신 LNG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LNG시장은 20년 장기 계약이 대부분이어서 이만큼의 양을 대체할 수 있는 공급원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 러시아 연맹원(상원)이 ‘사할린 B’ 계약의 합법성 조사에 착수했대요. 미트보리는 환경 파괴에 의한 손해가 500억 달러를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미트보리의 배후에 크렘린이 있을까?”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까요? 크렘린의 사냥개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사냥개라. 그거 멋진데. 미친개라면 더 좋겠지만 말이야.” 두 사람은 웃었다.

“참을성을 가지고 일하자. 우리에게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 말이야.”

미트보리는 손에 든 팩스로 시선을 옮겼다.

  “앵글로 더치석유의 ‘사할린 B'에 대해서라·····.” “앵글로 더치석유는 환경에 파괴적인 영향을 입힐 가능성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매우 중요한 극비 정보를 보내드립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미트보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EBRD의 융자를 받지 못하면 모든 융자가 도미노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 7년 이상에 걸친 재무위원회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앵글로 더치석유의 이언 존스턴에게서 ‘URGENT!(급함)’ 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진 메일이 들어왔다. ‘사할린 B'의 해외 측 스폰서 3개사 관계자에게 보낸 메일이었다. 짧은 글을 읽고 가나자와는 무척 당황했다.

  오늘 EBRD가 돌연 ‘사할린 B’의 융자 철회를 시사하는 언론 보도를 발표했다. 내일 그 쪽을 방문해 진의를 확인해 볼 예정이다.

EBRD가 보도자료를 발표한 후 전 세계의 환경보호단체가 목소리를 높여 승리를 선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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