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를 내려면 원칙을 비틀어라(Tipping Sacred Cows)

제이크 브리든 지음 / 김태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펴냄

 

균형, 밋밋하지 않고 과감하게!

  경영진이나 저자, 코치들은 균형을 곧잘 내세운다. 균형이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어려운 결정을 피하기 위해 타협을 받아들일 때다. 리더는 두 가지 상반되는 선택지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럴 수는 없다.

  많은 똑똑한 리더가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인내와 자제심을 보이지 않고, 한 번에 너무나 많은 일을 하려고 무리하게 덤빈다. 최고의 리더조차 모든 사람을 위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잘못을 저지른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다양한 요소에서 힘을 내는 근육과 언제 어느 요소를 사용할지 아는 지성 사이의 균형, 이것이 과감한 균형이다. 과감한 균형을 따르는 리더는 상황에 맞는 힘을 보여줌으로써 특정한 순간에는 최고의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 한편, 장기적으로는 두루두루 균형 잡힌 일련의 기술과 자질을 보인다.

  강한 의견을 가지되 유연성을 잃지 않고, 리더십의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며,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해서 일하고 이를 큰 맥락에서 연결되게 한다면 과감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창의성, 자기도취보다는 유용성에 중점

  테레사 아마빌레는 창의성의 스승으로 일컬어진다. 그녀는 1980년대 초반의 중요한 연구 이후로 창의성이 작용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왔다. 지금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로서 창의성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아마빌레는 창의성을 ‘모든 영역에서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으로 정의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유용하지 않은 것은 창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리더들은 아이디어를 대할 때 유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새로움만 칭송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자기도취적 창의성은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주되게 생각한다. 이에 비해 유용한 창의성은 ‘조직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한다. 그래서 기존 아이디어를 끌어오고, 분류하고, 용도 변경하고, 통합하고, 분석하고, 구조화하고, 조직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새로움을 더 좋아한다. 그들을 영구한 워싱턴대 심리학 교수 로버트 클로닝거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건강과 행복을 유지하고 인격적 성장을 이루도록 해주는 특성입니다. 그러나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모험심과 호기심을 사회에 기여하는 창의성으로 발전시키려면, 끈기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춰야 합니다.”

 

탁월성, 완벽한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

  리더는 목적지에 대해서는 탁월성을, 경로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진전을 줄기차게 주장해야 한다. 픽사의 공동 설립자 에드 캣멀은 가장 중요한 일에서 탁월성을 달성하려면 미숙해도 괜찮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매 시기에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은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캣멀은 시안을 공유해도 안전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렇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시안의 공유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애니메이터가 매일 미완성 작업물을 공유하기 때문에 결과의 탁월성을 뒷받침하는 과정의 혼란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리더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적인 기준을 낮춰야만, 최종적으로 최고의 기준을 달성할 수 있다.

 

공정성, 결과보다는 기회균등에 집중!

  지금까지 일어난 사회 변화는 간디나 마틴 루터 킹처럼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 용감한 리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무너뜨리려고 들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 끌어올려서 공정한 기회를 누리게 하고자 했다. 그러니 직장에서 냉대를 받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문제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 보복과 악의로 이끈다는 것인데, 부당한 일을 겪었더라도 지난 일을 잊어버려라. 다른 사람들을 벌주기보다 자신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본성을 이기는, 용기 있고 자제력 있는 행동이다.

 

열정, 성공을 향한 집착이 아닌 조화

   열정은 일을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할 수 있다. 실망을 이겨내고 계속 싸워서 훌륭한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 열정적인 사람은 영감과 목표를 갖고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며, 열정적인 리더는 팀원들이 더 신경을 쓰고 최선을 다하도록 영감을 준다. 팀이 열정적이라면 리더가 동기를 부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일을 해내는 데 들이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열정은 어두운 면도 가진다. 탈진할 때까지 몰아붙이는 바람에 도리어 성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리더들에게 조화로운 열정과 집착적 열정의 차이를 설명하면 대개 이런 반응이 나온다. “알겠습니다. 더 작은 성공을 받아들이면 전반적으로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거군요.” 요점은 그것이 아니다. 조화로운 열정은 기준을 낮추거나 노력을 포기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준비, 무대 뒤가 아닌 무대 위에서 대비

  우리는 항상 무대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무대 위에 서면 자신을 어떻게 드러낼까를 준비한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거나 시합 전에 연습을 하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무대 위에 있으며,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을 그렇게 전환하면 준비를 하고 성과를 올리는 방법이 바뀐다. 카메라가 없는 무대 뒤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기도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카메라가 돌아가는 무대 위에서는 계속 긴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삶은 그 자체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이며, 무대 뒤는 없다.

  모든 삶을 준비 과정으로 보면 매 순간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된다. 현재만이 유일한 시간이다. 다른 모든 것은 기억이거나 상상일 뿐이다. 현재를 더 충실하게, 더 열린 자세로, 더 과감하게 살면 영원히 성장하게 될 것이다.

 

 신성한 소의 역효과를 피하라

  2005년에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레스가 케니언대학에서 졸업식 연설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짧은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두 마리의 어린 물고기가 나란히 헤엄을 치다가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가는 나이 든 물고기를 만났습니다. 나이 든 물고기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얘들아, 안녕! 물이 어떠니?’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어린 물고기들은 계속 헤엄쳐 갔습니다. 잠시 후 그중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를 보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물이 뭐야?’”

  당신이 가장 깊이 섬기는 신성한 소를 찾아라. 그것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레스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어린 물고기들이 무엇인지 모른 채 매일 헤엄치던 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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