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Imagine)

김진섭 지음  / 용감한책 펴냄

 


 

 

  버릇처럼 카카오톡을 터치해 친구목록을 넘겨보고 있다. 리스트를 훑어 내리던 중 U의 이름 앞에서 화면을 멈췄다. U가 환하게 웃는 사진이 보였다. U의 신상 또는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온 듯 느껴졌다.

내 프로필 사진은 그대로 두고 상태 메시지를 수정했다.

"초콜릿 먹기, 웃기, 담담히 받아들이기·····. 힘내!"

표지를 또 던진다. 표지를 알아봐야 할 텐데·····.

 

  손을 흔들며 아침 인사를 했다. U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U는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봤다.

“자···. 이거!”

“감사합니다. 초콜릿 먹고 싶었는데 헤헤.”

“짝궁 된 기념으로 준비한 거예요. 옆에 비서 언니들하고 나눠드세요.”

“그런데. 자리 옮기신 거예요?”

“네! 제가 옮겨달라고 했어요. U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용기를 낸다는 것 그거 별거 아니다. 걱정했던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U에게 푹 빠져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한동안 하지 않았다. 마음 떠난 영업사원인 내가 영업을 계속 하게 만든 건 U앞에서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젠 글쓰기도 U와의 미래를 위한 도전이 되어 버렸다. 나는 글을 써서 성공한다는 기약 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사랑의 힘을 믿어볼 수밖에···’

U의 확실치 않은 응원에 허세가 하늘을 찌른다. 이제는 그녀도 나에게 표지를 던지고 있다. ‘표지를 따라가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다 써진 원고를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속으로 탈고를 외쳤다. 그리고 한국 저작권위원회 홈페이지에 방문해 저작권 등록을 신청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기 위해 내용을 요약하는데도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메일을 보내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운다.

‘책아, 그렇게 해줄래?’

평소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에 도착해 U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U는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소식은 아무도 몰랐다. 결국 U가 왜 출근을 안 하는가에 대한 답은 아무도 얻지 못했다.

U와 통화를 하고 싶다.

“네 에프씨니임~”

“U 아프다면서요? 괜찮아요?”

“네 병원 다녀와서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괜찮아졌어요. 잠을 많이 안자고 무리해서 그렇데요.”

“U 아프지 마세요.”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그 대답은 ‘성공할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고,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이것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결론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흔히 말하는 일반화의 오류다. 이제야 알았다.

내가 간과한 것은 작가들 중 성공한 작가들만 머릿속에 그렸다는 것이다.

 

  U에게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그녀는 몇 주째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간 U의 메시지는

심상치 않은 표현의 연속이었다. U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듯 짧은 한 단어를 메시지로 남겼다.

“END"

끝이다. 메시지가 자정이 지나자 나타났다. 냉정한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썼다.

:GOOD CHOICE"

현명한 판단이다. 나는 잡아 줄 수도 없는 남자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잘난 놈을 만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여자사람이다.

 

   책 쓰기 강의를 들으며 새로 시작한 집필은 자기계발서이다. 내 이야기를 자기계발서로 저술하면

좋겠다는 영감을 받았다. 현실에 대한 이야기, 꿈을 찾는 이야기, 꿈에 대한 이야기,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한편의 작품이 나올 거로 생각했다.

며칠을 고심 끝에 목차를 잡을 수 있었다. 제목은 <꿈을 찾는 도박사>이다. 30대 중반에 꿈을 찾는

노력은 청춘을 소모하며, 나머지 인생을 담보로 하는 도박과 같다. 30대 중반이 되자 내 삶의

키워드는 생존이 되었다.

“Love and dream together, if you"

“꿈도 사랑도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책에서 본 글귀다. 꿈도 버릴 수 없고 사랑도 버릴 수 없는

간절한 내 마음이다.

 

   ‘이 책이 마지막이다’ 커다란 결심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 겨우겨우 실적을 맞춰 몇 달의 기간을 벌었지만, 지금의 수입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글을 쓰는 것도 당장 돈이 되는 일이 아니기에 언젠가 일을 해야 한다. 다만 작가의

꿈을 놓고 싶지 않을 뿐이다.

여행은 끝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면 안 된다.

 ‘실패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나 하자! 난 최선을 다했다’

 

   힘들다. 너무 힘들다. 풀리지 않는 인생이 막막하기만 하다.

‘난 아직 집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여행을 계속 하고 싶다·····’ 내 마음은 다시

글쓰기로 눈을 돌리고만 있다.

현실이 힘들수록 꿈속으로 도망가려고만 한다.

‘나는 꿈의 노예다’

또 다른 U는 내 고객이 될 뻔한 동갑내기 여자사람이다. 애인도 될 뻔 했다. 다음날 낮, 또 다른 U를

잠깐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마케팅 회사 전화 같다.

 

   "Joy is in the air"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 그냥 희망을 써보고 싶었을 뿐이다.

<파울로 코엘료>작가의 <연금술사>를 다시 읽는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

마치 내가 산티아고 같다는 느낌이다.

‘난 어디쯤 왔을까?’

‘조금만 더 가면 알 수 있을까?’

‘보물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데·····’

 

   올해도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버티고 있다. 회사에서의

퇴사 압박은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매달 조금씩 지급되던 유지수당도 이젠 바닥이다. 이젠 생계를

위해 어떤 일도 해야 한다. 글은 밤에 써도 충분하다.

 

   <그렇게 작가가 된다> 오 년 동안 글을 쓰며 깨닫게 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다음날

만나 계약서에 서명했다. 약 2주의 시간 동안 출판사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원고를 수정해서 보냈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표지를 따라 왔다.

책의 첫 장을 넘겨 메시지를 적는다.

U를 기다리며··· ····

<꿈, 사랑, 그리고 인생. 책에 모든 걸 담았습니다. 당신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반세기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

                                                                         - 작가 L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리버보이 2층에서 U를 기다린다.

테이블 위에 놓인 책 <상상. Ima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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