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아비에저 터커 지음 /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펴냄

 

 

 

  크리스는 아무 말 없이 편지봉투를 소크라테스에게 건네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봉투를 열었다. “앞으로 사흘 남았네.” 제발 부탁이니 내 충고대로 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냥 도피하란 말이야.

  “나를 설득하고 싶다면 내가 방금 받은 합법적인 징병 영장에 반대하는, 또한 군 입대에 반대하는

논증을 가져와야 해. 이 전쟁이 불필요하고, 쓸모없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데에는 우리의 의견이 일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을 어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두 가지 가장 중요한 가정에 모두 동의했다.

첫째, 불의의 가해자가 되는 것보다는 불의의 희생자가 되는 편이 더 나은데, 왜냐하면

        부당해지는  것이야말로 행위의 당사자에게는 자기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불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사람은 바로 그 행위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불의는

         일종의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정의는 항상 지식의 문제이다. 만약 정의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항상

정당하게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또는

이런 지식을 어렴풋이만 파악하고 있다. 다수의 의견은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지침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 가장 중요한 유형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가 과연 누구인지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법을 모르는 것은 무지일까? 학습을 하지 않은 것일 뿐 무지는 아니다. 이것이 무지라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의를 저지를 것이다. 여기서 무지란 사회 통상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모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리라. 알지만 자신도 모르게 법을 어기는 경우가 있다. 이때의 행위는 불의일까? 이건 불의가 아니고 불법이라 할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왜곡하여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무지하기에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리라.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지가 바로

불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때의 행동이 불의일 것이다.

 

  불의란 무엇이며 정의란 무엇일까?

인간이 이성으로 행동함이 옳건만 그렇게 행동하지 못할 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리라 짐작한다. 나 역시 정확한 정의의 개념은 모른다. 그러나 무지가 모두 불의는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쯤은 안다. 나만이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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