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예전에 둘이 안동을 다녀오는 데 아내에게 잠깐 운전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왠지 운전하는 것이 이상하다. 아내를 흔들며 조는 것 아니냐며 소리를 쳤다. 아내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잠깐 눈만 뜨고 정신이 없이 운전했던 것이다.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나는 그때 십년감수가 이런 상황이란 걸 알았다. 

  그 후로는 절대로 장거리는 혼자 보낼 수가 없었다. 2014년 가을, 아내가 전남 구례를 가자고 한다. 친구가 구례에서 전통부채를 만드는 데 시골 구경도 할 겸 가자고 하는 것이다. 시골 구경 가는 걸 좋아하는 나는 냉큼 따라 나섰다. 아니, 좋아하지 않아도 따라 나서야 할 판이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귀농이 아닌 귀촌이 꿈이었다.

 

  하동 화개장터와 멀지 않은 구례 한적한 시골에 도착하니 공기 좋고 한적해 좋다. 향긋한 풀 냄새는 도시의 공해로 찌든 머리를 청정수로 만들어 준다. 먼 산의 낮은 구름은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한 포기 풀도 도시의 풀과는 격이 다름이 느껴진다. 옆 좁은 개울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 어찌 이리도 마음 깊이까지 파고드는 소리일 수가 있을까? 밤에 듣는다면 세상에 이런 자장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아내가 부른다.

 

  첫 인사를 하고 차 한 잔을 하면서 잠시 쉬었다. 자기는 부채 만드는 중간과정을 만들어 장인들에게 공급해 준다고 한다. 자기도 완제품을 만들어 인간문화재로 등록하고 싶다고 한다. 이 중간 과정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왜 사람이 없느냐고 하니 이 과정은 너무 힘이 들어 하지를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나무 재배 단지에서 다 자란 대나무를 베어 온다. 그런데 이것이 제일 고된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보기에도 긴 대나무를 베어 공장까지 운반하는 일이니 힘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음 부채 크기로 도막을 내어 상품가치가 좋은 것을 고른다. 그리고 몇 번을 삶고 말린다. 이 과정이 끝나면 여섯 쪽으로 쪼갠다. 한쪽씩 잡고 연한 속살을 깎아내어 겉대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과정은 이렇게 단순한 것 같지만, 부부의 손을 보니 거북이 잔등 같다.

 

  왜 기계화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계가 아무리 정밀해도 사람 손길 같겠냐고 반문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장인이 만든 부채가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장인들의 마음과 정성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어서 이 과정을 할 사람이 나타나 꼭 자기도 완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시 다짐을 한다. 꼭 그리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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