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우울해질 때

  나이 17세(1972년경)로 기억하고 있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방과 후 나를 찾으신다. 찾아가니 선생님은 같이 갈 때가 있다고 하신다. 버스를 타고 서울 한 극장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영화 간판을 보니 ‘콰이강의 다리’였다. 그려진 모습으로 보아선 전쟁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되자 경쾌한 휘파람의 행진곡(Colonel Bogey March)과 누더기를 걸친 군인들이 줄을 맞추어 나타난다. 전쟁 영화에 이런 배경음악이 깔릴까 의아해했다. 음악은 경쾌해서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마지막 콰이강의 다리가 폭파되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는다. 1957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이렇게 찍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전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는 중에 선생님이 관전평을 들어 보자고 하신다. 저는 전쟁은 싫고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고 했다. 왜냐고 하시기에 아버지가 6.25사변을 모두 겪으셨고 그 일부를 알기에 싫을 뿐이라고 했다.

 

  내가 너와 같이 이 영화를 본 것은 전쟁이 싫다면 왜 싫은 것이고, 그 이유는 무엇이기 때문이라고 너의 생각을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알아야 후에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을 보든 내 생각을 제대로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일본과 영국은 제국주의의 압제자들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미얀마와 타이의 국경이라니 조지 오웰의 수필이 생각난다. 오웰이 영국 경찰로 미얀마에 파견되었을 때 현실을 그린 수필이다. 영국인 조지 오웰은 수필 “Shooting an Elephant"에서 제국주의는 사악한 악마라고 표현했다. 쏘기 싫은 코끼리를 미얀마인들의 비웃음이 싫어서 죽인 것이라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코끼리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는 읽는 독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이 영화 역시 다리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관객에 달린 것이리라.

 

  영화에서 말하고자 함은 전쟁의 승자, 패자는 없으며 모두에게 무의미한 싸움이며 오로지 약자에게 보여주는 강자들의 자존심 대결일 뿐이라 생각한다.

 

  나는 선생님과 이 영화를 본 후로 우울할 때는 휘파람 행진곡을 기억하곤 한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영화나 행진곡 보다 선생님의 사랑이 더 와 닿는 것 같다. 특히 배우지 못함에 서글플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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