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시험에 합격했던 기억, 혹은 떨어진 기억

   나는 중학 2년 중퇴를 한 학력이다. 당시 너무 배우고 싶었지만 중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고?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가 직원이 돈을 가지고 줄행랑을 쳐서 망했다. 내가 중학 입학 때 17세, 매우 늦은 나이였다. 중퇴를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리자 미국 양부모를 소개해 줄 테니 미국으로 가란 제의를 했다. 나 역시 배우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포기하는 것이 부모님의 경제적 고통을 덜어 주고파 하는 것이라 거절했다.

 

   그리고 나이 19세에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중학자격 검정고시를 공부해 1년 후 합격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남으로서 가정 경제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힘들게 회사를 다녔다. 누가 베이비 세대는 이 나라를 일으킨 세대라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나라를 일으켰는지 모른다. 그저 나, 아니 우리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 일했을 뿐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2014년 초에 방송대 입학생 모집 요강을 우연히 보았다. 중학교도 졸업 못한 주제가 그걸 보아서 무얼 한다고. 사람은 못 오를 나무 없다고 했던가. 오기가 발동했던 것이다.

 

   3월 고졸 검정고시 과년도 문제집을 샀다. 그리고 회사생활 하면서 죽어라하고 공부를 했다. 1달밖에 공부를 못하고 검정고시 시험장행. 그리고 한 달 후 평균 77점으로 전 과목 합격이라고 뜬 것이었다. 누가 알리오, 나의 가슴 벅찬 감격과 기쁨을.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고졸 검정고시 합격하고 뭐가 대단하냐고. 환갑 나이에 내게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인생 즐거움, 행복이 달려 있으니까.

 

   그리고 바로 방송대 2학기 영어영문학과에 접수를 했다. 2학기에 접수를 하고 지금은 2학년이 되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즐기면서. 내가 필요한 것은 졸업장, 자격증이 아니다. 하고 싶은 공부하고 스스로 뭔가 스스로 이루어냈다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나는 행복하게 여생을 마치고 싶다. 좋아하는 일하고 즐기며 공부하는 그런 행복한 여생 말이다. 내 자식들에게 아빠는 부끄럽지 않은 여생을 살았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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