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석 선생님

  남들이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에 나는 중학교를 입학했다. 그때에 김영석 선생님은 고려대학교 법대생과 선생님이라는 이중생활을 하고 계셨다. 처음 나는 선생님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고 하시는 줄 알았다. 차후에 알고 보니 모든 선생님들은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그 학교가 설립하게 된 배경이 있다. 원래는 주변의 불우한 고아들을 모아 같이 생활 하는 고아원이었다. 그 원장님이 주변에 공부 못하는 애들을 보고 모여서 공부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학생 수가 많아지니 설립을 작정 한 것이었다. 원장님은 미국에서 평생을 사시다 전쟁이 끝나고 자기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고 한국으로 오신 것이란다. 학교 건물도 미국 친구들의 후원으로 작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학교가 경제 여건이 좋을 수가 없으니 원장님의 간청에 선생님들께서 호응을 하신 것이었다.

 

  김영석선생님도 그 지역에 사시는 분이셨다. 김 선생님은 나에게 집에서 공부가 되지 않으면 선생님 집으로 언제든 오라셨다. 그런데 선생님 집으로 가기는 쉽지 않았다.

 

  하루는 선생님 집으로 심부름을 보내신다. 무슨 물건을 주시며 자기 집에 전해 주고 오라고 하신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 아버지이신 것 같다. 들어오라고 하셔서 들어가니 밥상이 차려있다. 그리고 나에게 먹고 가라고 하신다. 이 밥상을 어찌 내가 받을 수 있겠는가. 먹지 못하겠다하니 잠시 앉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김 선생도 너처럼 어렵게 배웠으니 너희 사정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따르고 배우라고 하신다. 아마도 김 선생님께서 미리 부탁을 하신 것 같았다.

 

  그 후로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 찾아가 같이 공부하곤 했다. 스스로 나의 멘토가 되어 주신 것이었다. 공부도 같이 하고 영화도 가끔 같이 보며 나의 인생의 밑받침이 되어 주셨다. 그런 선생님을 나는 2학년 자퇴라는 배반감을 안겨 드리고 떠나야했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라.” 최고 정상은 내리막만 있을 뿐이다.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행동을 잊지 말아라. 김영석 선생님 감사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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